우리는 흔히 건강을 이야기할 때 심장, 뇌 등과 연결된 혈관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중년 이후 찾아오는 수많은 질병이 혈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진실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혈관 건강이 우리의 근육량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육이 사라질수록 혈관은 조용히,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근육은 단순한 움직임 그 이상, 혈관의 든든한 보호막입니다

근육은 단순히 우리 몸을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혈관 건강에 필수적인 대사 기관입니다. 근육은 혈당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고, 체내 지방을 연소시키며, 무엇보다 심장과 혈관이 짊어져야 할 부담을 크게 덜어줍니다. 특히 우리가 운동할 때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혈액을 심장 쪽으로 힘껏 밀어 올리는 강력한 펌프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로 인해 혈류 순환이 원활해지고, 혈관 벽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여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합니다.

만약 근육량이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혈관 벽에는 불필요한 부담이 가중되고, 점차 탄력성을 잃어가게 됩니다. 이는 결국 고혈압, 동맥경화는 물론 말초혈관질환과 같은 심각한 혈관 질환의 위험을 현저히 높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근육이 사라지면 혈관은 염증과 대사 이상에 무방비해집니다

근육은 또한 우리 몸을 보호하는 특별한 물질을 분비합니다. 바로 '마이오카인(Myokine)'이라는 생리활성 물질입니다. 이 물질은 전신의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혈관 내벽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근육량이 감소하면 마이오카인 분비량 또한 줄어들어 전신에 걸쳐 염증 수치가 상승하게 되며, 이는 혈관 내피세포의 기능 약화로 직결됩니다.

특히 노년기에 나타나는 사코페니아(근감소증) 상태에서는 혈관 내벽이 쉽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손상이 반복되면 최종적으로는 혈전(피떡)이 생성되거나 혈관이 완전히 막히는 치명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집니다. 또한 근육은 우리 몸에서 당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조직입니다. 근육량이 줄어들면 혈당 조절 능력이 급격히 떨어져 혈당 수치가 불안정하게 오르내리게 됩니다. 이렇게 혈당이 급변하면 혈관 내벽은 끊임없이 마찰되고 손상되며, 이러한 반복된 손상은 결국 혈관 경화와 파열의 위험을 증폭시킵니다.

근육 감소는 지방 대사 능력도 저하시켜 중성지방과 '나쁜'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입니다. 이들 지방 성분들이 혈관 벽에 쌓여 침착되면, 결국 죽상경화증으로 발전하여 혈관을 좁고 딱딱하게 만듭니다.

혈관 노화를 되돌리는 가장 확실한 열쇠, 지금 바로 잡으십시오

수많은 연구 결과는 근육량이 풍부할수록 혈관의 탄력이 높고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낮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년 이후부터는 단순히 체중의 숫자에만 연연하기보다, 골격근량과 체지방률의 균형을 살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걷기나 가벼운 유산소 운동도 물론 좋지만, 나이가 들수록 반드시 저항운동(근력운동)을 꾸준히 병행해야 합니다. 하루에 단 20~30분만이라도 자신의 체중을 활용한 스쿼트, 런지, 플랭크와 같은 근력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천한다면, 혈관 건강은 분명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입니다.

근육이 단지 움직임을 위한 조직이라는 오해는 이제 버려야 합니다. 근육은 혈관을 지키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방어선입니다. 아무리 좋은 혈압약을 복용한다 한들, 근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혈관은 다시금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약에 의존하기보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활기찬 노년을 위한 가장 현명한 시작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