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는 1930년대말 극작가 사무엘 베켓에게 "나는언어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조이스가 17년에 걸쳐 집필한 「피네간의 경야(經夜)」(Finnegans Wake)는 언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최대의 노작(勞作)이자 난해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경야'는 밤을 지샌다는 뜻이죠. 

[피네간의 경야]는 저녁에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더블린의 한 밤의 이야기로, 더블린 외곽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어위커(Earwicker)의 잠재의식 또는 꿈의 무의식을 그린 작품입니다. 역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이 작품의 명확한 개요나 줄거리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난해함은 조이스가 구사하는 언어적 복잡성과 다차원적인 서술전략에 기인합니다.

우리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소란스럽습니다.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드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게 됩니다. 낮 동안 명료했던 의식은 사라지고, 논리와 인과관계가 뒤섞인 꿈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꿈의 과정을 완벽하게 글로 옮겨 적는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요?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알던 이야기의 형태라기보다는, 해독이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암호문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처럼 난해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인 '꿈의 텍스트'를 통해, 우리의 무의식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속에 숨겨진 언어의 비밀을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밤의 서사: 이성 너머의 새로운 논리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야기들은 대개 ‘낮의 논리’를 따릅니다. 등장인물은 명확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며,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의 흐름을 기록한 ‘밤의 서사’는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집니다. 이곳은 확실성이 사라지고 모호함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낮의 기록이 의식의 흐름을 쫓는다면, 밤의 기록은 무의식의 흐름을 쫓기 때문입니다.

이 꿈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의 정체성조차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인물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 만난 친구가 오늘 꿈속에서는 아버지로, 혹은 낯선 타인으로 등장하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무의식 속에서 자아가 해체되고 통합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남성 주인공이 거대한 산으로, 여성 주인공이 흐르는 강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개인은 구체적인 인격을 넘어 집단 무의식의 원형으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무의식의 언어: 꿈속에서 발현되는 숨겨진 문법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카오스처럼 보이는 꿈의 세계도 나름의 정교한 언어적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되어 있다"고 설명하며, 꿈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 기제로 '치환(displacement)''압축(condensation)'을 꼽습니다.

치환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대상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방어 기제입니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 누군가를 향한 금지된 욕망이나 충동은 엉뚱한 사물이나 상황으로 위장되어 나타납니다. 반면 압축은 여러 이미지가 하나로 중첩되는 현상입니다. 짧은 꿈의 시간 동안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하나의 장면 속에 겹쳐서 나타나는 것이죠. 이러한 꿈의 작용은 언어학의 '환유''은유'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무의식의 언어가 어떻게 욕망을 드러내고 감추는지를 보여줍니다.

두 진실을 한 단어에 담는 환상의 언어

꿈의 언어가 가진 가장 독창적인 특징은 바로 '합성어(portmanteau word)'의 사용입니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모순되는 두 개념이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죽음'과 '성장'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이분법적 논리가 허물어지며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텍스트에서는 이를 'cropse'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는 곡물을 뜻하는 'crops'와 시체를 뜻하는 'corpse'를 합친 말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죽음을 의미하는 시체와 생명을 의미하는 곡물이 하나의 단어 속에 융합됨으로써,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거름이 된다는 순환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무의식의 언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진실을 단 하나의 단어 속에 압축하여 보여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의식의 롤러코스터, 온전히 경험하기

그렇다면 우리는 이토록 난해하고 복잡한 무의식의 텍스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정답은 ‘분석’하려 하지 말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꿈속의 언어들은 고정된 의미를 향해 멈춰 서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의미로 미끄러지며 질주합니다. 이것은 마치 의미의 롤러코스터와 같습니다.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중력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와 낙차에 몸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난해한 문장과 알 수 없는 단어들의 향연 앞에서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 현기증 나는 언어의 유희와 리듬을 즐기면 됩니다. 논리적인 독해가 아닌, 감각적인 체험으로서 텍스트를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작가가 의도한 희열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밤은 낮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고 역동적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무의식이 써 내려갈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함 속에야말로, 당신의 가장 진실한 모습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