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등장한 이후 전 세계는 AI에 열광해왔습니다. 기업은 AI를 도입하고, 개인은 AI를 구독하며, 각국 정부는 AI 인프라 투자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선언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혁신의 엔진 뒤편에서 조용히, 그러나 매우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자원이 있습니다. 바로 전력입니다. AI는 단순히 소프트웨어가 아닙니다. AI는 엄청난 양의 전기를 먹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소비 규모는 이미 국가 단위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질문 하나가 소모하는 전기

평범한 인터넷 검색 한 건에 드는 전력은 약 0.3Wh 수준입니다. 그런데 AI 기반 쿼리는 같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때 일반 검색보다 최대 10배 이상의 전력을 소비합니다. GPT-4 수준의 모델이 답변 하나를 생성하는 데 약 2~3Wh를 소모한다면, 최신 추론 중심 모델은 복잡한 요청 하나에 40Wh 이상을 쓸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수억 명이 동시에 사용하는 서비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들은 단순한 기술적 수치를 넘어섭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약 180TWh(테라와트시) 수준이었으며, AI 수요 급증으로 인해 2030년까지 약 420TWh로 2.3배 이상 증가할 전망입니다. 기존 데이터센터가 10~25MW 규모의 전력을 소비했다면,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는 100MW를 훌쩍 넘는 전력을 상시로 요구합니다. AI 학습은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24시간 중단 없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스타게이트, 그 숫자의 무게

오픈AI가 소프트뱅크, 오라클과 함께 발표한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는 4년에 걸쳐 미국 전역에 최대 5,000억 달러(약 742조 원)를 투자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AI 인프라 프로젝트입니다. 텍사스 애빌린에 들어서는 플래그십 시설만 1.2GW 규모로 확장될 예정이며, 이는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약 1기의 발전 용량에 해당합니다. 오픈AI가 언급한 최종 목표인 250GW는 인구 15억 명의 인도 전체가 사용하는 연간 전력량과 맞먹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자금 구조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대규모 투자'라는 표현으로는 담기 어려운 복잡한 그림이 펼쳐집니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가 각각 40%의 지분을 보유하며 190억 달러씩 기여하지만, 나머지 자금은 부채 금융과 유한책임조합원으로 충당됩니다. 즉, 스타게이트는 기업들이 자기 자본만으로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래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대규모 차입을 일으키는 구조입니다.

오픈AI는 2025년 상반기 약 43억 달러(약 6조 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같은 기간 R&D와 운영에 78억 달러(약 11조 원) 이상을 지출했습니다. 2026년 예상 손실 규모는 140억 달러(약 19조 원)에 달하며, 2029년까지의 누적 손실은 최대 1,43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전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데이터센터도 없다

2026년 미국 내 가동을 목표로 했던 12~16GW 규모의 데이터센터 물량 중 실제 착공에 들어간 것은 5GW에 불과하다는 블룸버그의 보도는 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타게이트마저 텍사스 현지의 전력과 인프라 문제로 지연을 겪었습니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막는 결정적 요인이 이제 반도체 수급이 아니라, 전력과 비용이라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복합적입니다. 전기차 보급 등으로 이미 한계에 가까운 미국 전력망은 대형 데이터센터의 추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이퍼스케일 운영사들은 전력망 연결 비용을 자체 부담하거나 자체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와 저장장치 비용도 2025년 1분기 대비 각각 5배, 3배씩 폭등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건물보다 전기가 먼저 문제가 된 셈입니다.

지역 사회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대형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지역 전력 요금이 오르고, 수자원 고갈 문제가 생기며, 지역 주민의 생활 인프라가 압박을 받습니다. 이는 이미 미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으며, 인허가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모대출이 떠받치는 구조, 그 위험성

AI 데이터센터 붐의 또 다른 이면에는 사모대출 시장의 급팽창이 있습니다. 일반 은행들이 이 규모의 대출을 꺼리는 사이, 사모펀드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블랙스톤을 비롯한 주요 운용사들은 이미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을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로 채우고 있습니다. 오피스 등 전통적인 상업용 부동산의 대체 자산으로 데이터센터가 자리 잡은 것입니다.

문제는 이 구조의 레버리지 비율입니다. 일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 자기자본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나머지를 전부 차입으로 충당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은 2025년, AI 시장이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경우 해당 대출을 제공한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될 수 있다고 공식 경고한 바 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의 시각에서 AI 데이터센터는 수요가 사라지면 다른 용도로 전환하기 어려운 부동산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금리 환경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일부 AI 기업들이 사모대출 시장에서 10~12%대의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투자가 얼마나 고위험으로 분류되는지를 보여줍니다. 10년 만기 기준으로 원금보다 이자가 더 커질 수 있는 금리입니다. 금리가 예상보다 길게 유지되거나, 전력 요금이 상승하거나, AI 서비스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리면 이 구조는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닷컴 버블과의 닮은 점, 다른 점

현재의 AI 인프라 과잉 투자를 닷컴 버블에 비유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인프라와 통신망에 대한 과잉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후 큰 조정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깔린 인프라는 결국 오늘날 인터넷 경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AI도 비슷한 경로를 걸을 수 있다는 낙관론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다만 차이점도 분명합니다. 닷컴 버블 당시에는 주로 나스닥 지수와 벤처 투자가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의 AI 인프라 투자는 사모대출, 연기금, 보험사, 대형 자산운용사까지 깊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AI 데이터센터는 건설 비용이 천문학적이고, 특정 용도에 맞춰 설계되어 있어 다른 용도로의 전환이 어렵습니다. 조정이 발생할 경우 그 여파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퍼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AI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기업 운영 방식과 노동 효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범용 기술이라고 평가하며, 장기적으로는 비용 대비 효율이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이처럼 AI 산업의 구조적 성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을 떠받치는 금융 구조의 취약성을 직시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균형 잡힌 시각입니다.

한국이 놓인 자리

이 거대한 전력 전쟁은 한국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활을 걸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데이터센터가 완공되어 서버가 입고되어야 비로소 매출로 연결됩니다.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면, 그 여파는 곧바로 한국 반도체 업계의 수주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과거 주거용 대비 크게 저렴했으나, 지난 10여 년 동안 산업용 요금이 반복적으로 인상되면서 이제는 주요 선진국 중 한국만이 산업용이 주거용보다 비싼 역전 현상을 보이는 상황입니다. AI 시대에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핵심 산업 인프라가 된 지금, 전력 요금 구조와 에너지 자립 수준은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투자,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 등 다방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기술의 진보, 그 이면을 읽는 눈

AI는 분명히 인류에게 전례 없는 생산성과 편의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신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그 이면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지금 AI 인프라에 투입되는 자본의 상당 부분은 자기자본이 아닌 차입금이며, 그 상환 가능성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수익에 달려 있습니다. 전력이라는 실물 자원의 한계는 계획표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의 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AI 시대는 분명 열렸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떠받치는 인프라의 구조적 건전성, 그리고 지구의 에너지 한계라는 물리적 제약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제대로 읽는 방법입니다. 빛나는 기술 뒤에는 반드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과 자본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 무게를 직시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