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정복되고, 신약 개발의 난제가 해결되며, 건물이 스스로 치유되는 세상은 인류에게 완벽한 유토피아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강렬한 빛이 드리워진 이면에는 더욱 짙고 섬뜩한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인류는 지금 판도라의 상자를 단순히 연 것이 아니라, 상자 자체를 부수어 버린 상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쏟아져 나온 기술적 산물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살벌한 선택만이 남겨져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 기술로 암을 치료하겠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유전 코드로 전염병을 조립할 수도 있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는 시대: ‘공포의 민주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위험한 기술은 국가나 거대 기관이 철저히 관리할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2017년에 깨졌습니다. 캐나다의 한 연구팀은 거창한 군사 기지가 아닌 평범한 연구실에서, 오직 인터넷 쇼핑과 택배 서비스를 통해 유전자 합성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민간 기업 사이트에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DNA 조각들을 마치 조립 가구를 주문하듯 구매했습니다. 약 1억 원이라는, 과학 실험치고는 적은 비용으로 배송된 이 조각들을 연결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미 자연계에서 멸종했던 말연두 바이러스가 21세기에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안보 전문가들을 경악게 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말연두 바이러스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인류 최악의 재앙이었던 천연두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테러리스트가 생화학 무기를 얻기 위해 삼엄한 보안을 뚫고 샘플을 훔쳐야 했으나, 이제는 노트북 하나로 유전 코드를 내려받고 재료를 직구하면 그만입니다. 파괴적인 힘이 국가의 손을 떠나 개인에게 넘어가는 이른바 공포의 민주화 현상은 우리가 방어 불가능한 전염병과 언제든 마주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우리 몸의 비밀이 곧 국가의 운명: 유전자 데이터 패권 전쟁

20세기의 패권이 석유가 매장된 땅을 차지한 자들의 것이었다면, 21세기의 패권은 우리 몸속의 생체 데이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연료는 다름 아닌 인간의 유전자 데이터입니다. 특히 중국은 14억 인구의 유전자 정보를 국가 전략 자산으로 지정하고 거대한 방화벽을 쳐 외부 유출을 원천 봉쇄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의 거대 기업들은 전 세계 산모들의 기형아 검사 키트 등을 통해 전 지구적인 유전자 정보를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서구 사회가 개인 정보 보호와 윤리적 문제로 고심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규제 없는 환경에서 막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은 괴물 같은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특정 국가의 유전자에만 최적화된 항암제나 신약이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면, 데이터 주권을 잃어버린 국가들은 생물학적 종속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우리 몸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돈으로 ‘완벽한 아이’를 사는 세상: 인류의 새로운 분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더 좋은 환경을 사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이제는 우월한 유전자까지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난임 클리닉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배아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성적표를 매기는 서비스가 시행 중입니다. 부모는 심장 질환 위험이 낮거나 키가 크고, 학습 능력이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최상의 배아를 선택해 임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질병 예방이 주된 목적이라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반드시 그 너머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막대한 자본을 가진 계층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화된 하드웨어를 장착하고 태어나게 됩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연 그대로의 무작위 유전자에 운명을 맡겨야 합니다. 세대를 거듭하며 축적된 이 생물학적 격차는 단순한 빈부격차를 넘어, 인류를 강화된 인간자연 인간이라는 두 개의 종으로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이는 노력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생기는, 가장 슬픈 디스토피아의 서막입니다.

생태계의 설계자가 된 인류: 되돌릴 수 없는 주사위

인류는 이제 자연의 절대적인 확률 법칙마저 해킹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은 특정 유전자가 자손에게 전달될 확률을 강제로 100%로 끌어올립니다. 이 기술을 모기 방멸에 적용하면, 불임 유전자를 가진 모기가 생태계 전체로 급격히 퍼져 특정 종을 완전히 절멸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번 자연계에 풀려나간 유전자 드라이브에는 취소 버튼이 없다는 점입니다. 특정 종의 멸종이 생태계 전체에 어떤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지 인류는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의 연구는 멸종이 아닌 공존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모기를 죽이는 대신, 유전자를 수정해 말라리아 기생충이 살 수 없는 몸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는 기술이 파괴의 무기가 아닌 공존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결국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칼자루를 쥔 인류의 의도와 지혜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석기 시대의 감정과 중세의 제도를 지닌 채 신과 같은 기술을 휘두르고 있는 위태로운 존재들입니다.

알파폴드가 진화의 시간을 단축하고 크리스퍼가 비용의 장벽을 허물었으며, 생명은 이제 디지털 데이터가 되었습니다. 바이오 테러의 위협과 데이터 패권 전쟁, 생물학적 계급 사회라는 거대한 해일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쏟아져 나온 이 기술들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는 대신, 폭주하는 이 기술의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잡아야 합니다.

기술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자는 새로운 기회를 잡겠지만, 외면하는 자는 거센 파도에 휩쓸려 갈 것입니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불치병을 고치고 지구와 공존하는 길을 선택할 권한과 책임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편집 가능한 희망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통제 불능의 재앙으로 남겨둘 것인지는 오늘날 우리가 내리는 지혜로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